연중 제18주일 (02/8/4) (이사 55,1-3; 로마 8,35. 37-39; 마태 14,13-21) 지난 주일로 초등부, 중고등부 캠프가 모두 끝났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로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지요. 특히 초등부 캠프를 떠나기 전에는 비가 많이 와서 무척 걱정을 했었는데, 캠프장에 도착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날씨가 활짝 개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하느님이 우리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시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첫날 저녁에는 어린이들이 논두렁에 나가서 별을 바라보며 자연을 피부로 느끼는 체험을 했었는데 우리 모두는 강변에서 놀라운 광경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밤안개가 강물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었죠. 아스라이 달빛이 비치는 밤안개는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확실히 자연에 나가봐야 창조주의 신비를 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신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린 언제부터인가 신비로운 일들에 병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있었지만 무당들의 접신 모습이 매스컴에 보도되기도 하고, 환생과 같은 불교적인 교리가 대중화되었습니다. 또한 신비로운 현상을 소개하는 TV 프로가 매주 방영되기도 하고, 영적 세계에 대한 책들도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세속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신비스런 현상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달해있지요. 교회에서 공인된 성모 발현뿐 아니라 나주 성모, 메주고리 성모, 아키다 성모 등 성모님께서 나타셨다는 곳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찾아갑니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신비로운 현상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오히려 비과학적인 현상에 매료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아마도 과학이 준 세상의 발전이 그다지 신임할 수 없을 뿐더러, 과학의 총아라 할 수 있는 핵폭탄처럼 되레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제가 우상숭배라고 누차 이야기해도 많은 신자분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점쟁이를 찾아가는가 봅니다. 어쨌거나 신비로운 현상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 현상을 믿게 되지요. 그리고 이런 현상이 집단화, 가시화, 거대화가 되면 우린 그 현상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종교학적으로 볼 때, 기적과 종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어떤 종교든지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는 기적적인 현상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갖가지 사이비 종교가 창궐했을 때에는 무슨무슨 기도원 등지에서 치유 시술을 한다는 등 기적에 대한 소문이 난무했었지요. 사람들의 가장 아쉬운 구석을 잡아 이용해먹는 얄팍한 상술에 불과했지만,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세계 종교라 일컫는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 모든 종교 안에는 교주가 행한 기적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러하고, 부처님도 그러하고, 마호메트도 그러하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행한 기적도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처럼 거짓 행동에 불과한 것일까요?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린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기적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기적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병자를 치유하는 기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연을 지배하는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 앉은뱅이 등 수많은 장애인들을 고쳐주셨을 뿐 아니라 마귀들린 사람, 정신질환자도 고쳐주셨지요. 또한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도 고쳐주셨고 심지어 야이로의 딸, 라자로는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또 복음의 다른 부분을 보면 풍랑을 잠재우기도 하고, 물 위를 걷기도 하고, 물로써 포도주를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자연의 순리 안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로 예수님 스스로가 자연의 지배자임을 드러내신 기적이었죠. 이런 기적들이 사이비 교주와 크게 차이나는 것은 기적으로 인해 예수님 자신의 영달에 아무런 이득이 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이비 교주들은 주로 거짓으로 위장된 기적을 베풀면서 돈을 끌어모으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기적으로 인해 부수적인 이득을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진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어쨌건 아무런 이득도 오지 않는데 예수님은 기적을 왜 베푸셨을까요? 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불쌍한 이들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드셨다고 합니다. 바로 이 "측은한 마음"이 기적의 원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과 연민, 그리고 그 안에서 오는 슬픔과 아픔이 기적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5천명을 먹이신 기적도 그러한 맥락에서 출발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수많은 병자들을 외면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해가 지고 날이 저물어도 사람들이 집에 갈 기색도 안보이자 이제는 5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의 허기를 채워주려 하십니다. 그리고 이때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종류의 기적이 행해집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치유의 기적도, 자연 현상에 대한 기적도 아닌 인간 공동체 안에서 기적이 벌어집니다. 처음에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지요.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적은 양의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가 있었을까?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예수님이 빵을 들고 조금씩 떼어주시자 빵이 불쑥불쑥 자라나서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고 설명하던데, 예수님이 무슨 마법사입니까? 그런 식으로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한 정황이 어땠는지는 저 역시 모르겠으나, 중요한 건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음식이 남았다는 점입니다. 일찍이 예언자 이사야는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면서 사자와 양이 같이 뛰어놀고 어린 아이가 뱀이 사는 굴에 손을 집어넣어도 다치지 않는다는 표현을 했었는데(이사 11,6-8 참조), 이처럼 빵 하나로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어린애나 할 것 없이 모두 평등하게 빵과 물고기를 나누었습니다. 더 먹고 싶은 사람은 더 먹고 덜 먹고 싶은 사람은 덜 먹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 자리에 하느님 나라가 온 것입니다. 이런 일이 구약에도 있었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습니다. 그 만나는 오늘 5천명을 먹인 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이 다른 어떤 기적보다 중요한 건 이 기적으로 인해 하느님 나라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밝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다른 기적들이 하느님 나라의 부분적인 모습만 보여줬다면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은 하느님 나라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 주제는 마태오 복음사가가 지난 주, 그리고 지지난 주 복음에서 거듭 얘기해왔던 하느님 나라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기적이 정확하게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해가 기울어도 사람들이 돌아가지 않자 예수님더러 사람들을 돌려보내 각자 배를 채우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돌려보내지 말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러자 별로 가진 게 없었던 제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가진 거라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다섯 마리뿐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대화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대화는 우리들 내부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성직자나 수도자, 또는 자선 사업가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이 봉사하십시오. 여러분이 자기 것을 나누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 시간도 없고 가진 것도 별로 없어서 봉사한다거나 봉헌한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복음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은 그 적은 양, 5천명의 몫으로는 턱없이 적은 음식을 그냥 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십니다. 아주 적은 양이지만 달라는 대로 주십니다. 스스로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적은 양의 음식이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을 만큼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느님 나라가 왔습니다. 이 기적이 이제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도 가능합니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그것마저 빼앗기지 않으려고 뒤에 감추기보다 있는 그대로 나눌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다시 한 번 하느님 나라가 올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이 혼자 베푸신 기적보다 공동체가 모두 함께 한 기적에서 더 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